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작 뉴턴 (문단 편집) == 여담 == * 여러모로 독특한 행동으로도 유명한데, 학생 시절 돈이 없어 부유층 자제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동전 몇 닢을 모아 생활했다든가[* 정말로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뉴턴의 어머니 해나는 자신의 아들 아이작 뉴턴이 계속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대학을 간 아들의 용돈을 송금하는 것을 아깝게 여겼다고 한다. 뉴턴의 어머니의 수입은 연간 700 파운드가 넘었지만, 뉴턴이 받은 돈은 일년에 10파운드를 넘지 않았다. 그럼 등록금을 어디서 마련했냐면, 부잣집 애들의 뒤치다꺼리로 번 돈으로 '''[[사채|사채업]]'''을 해서 마련했다고 한다. 주 고객은 뉴턴 자신처럼 돈이 없는 학생들이었다고.] 유약하고 소심했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학창시절에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을 물리적으로 제압해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하는 강인한 면모도 있었고, 근육 사이를 탐험한답시고 [[바늘]]로 눈구멍과 눈알 사이를 깊숙이 찔렀다든가,[* 기적적으로 눈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더러운 바늘로 쑤신 덕분에 감염으로 한동안 앓아누웠다고는 하지만, 눈을 잃지 않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평생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다는 일화부터 정말 특이한 일화가 많다. * [[크롬웰]]이라는 이름을 가진 폭풍이 [[잉글랜드]]를 덮쳐서 큰 피해가 난 적이 있는데[* 그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의 이름에서 따온 것 맞다. 크롬웰이 집권했을 때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는 공화정이었는데, 그가 죽고 [[찰스 2세]]가 즉위하면서 [[왕정복고|왕정이 부활하자]], 이를 원통하게 여긴 크롬웰의 원혼이 잉글랜드에 강력한 폭풍을 일으켰다는 미신이 민중들 사이에서 퍼졌다.], 고향에 있던 10대 후반 뉴턴이 살던 곳에서도 폭풍우로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뉴턴은 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나와 널뛰기를 하면서 바람의 강도를 측정했다고. 이웃 사람들은 "바람이 마구 부는데 홀로 널뛰기나 하고 미쳤나?"라며 어이없어 했던 일화도 있다. * 밤하늘을 관측하려고 연에 등불을 달아 올렸다가 난데없이 밤중에 [[혜성]]이 떨어지네 뭐네 이웃들이 놀라[* 뉴턴이 어릴 적인 17세기만 해도 혜성은 불길한 존재였다. 하물며 작은 시골마을인 고향이라면 더더욱.] 난리를 피웠다가, 자세히 보고 혜성이 아니라 누가 [[연]]에 등불을 매달아 올린 곳임을 알아차려 연을 날린 뉴턴은 호되게 혼난 적도 있다. * 평생 [[동정#童貞, virginity]]이었다. 뉴턴의 임종을 지켰던 주치의 리처드 미드 (Richard Mead)가 후에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그가 자신의 임종 때에, 자신은 동정이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고 밝혔다.[* Iliffe, R. (2007, January 25). Newton: a Very Short Introduction.] 1693년경 뉴턴이 그의 친구, 철학자 [[존 로크]]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선생님께서 여자들과 그 밖의 수단으로 자신을 곤란한 일에 끌어들이려 했다는 생각에 그만 마음이 상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Newton, I. (1966). The Correspondence of Isaac Newton (H. Turnball,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물리학]]보다 [[연금술]], [[성경]]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다고 한다. 사실 그것들이 본업이고 물리학은 취미 생활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는 후대에 소위 이단으로 간주되는 학자로 고대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톨릭]]이 전부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연금술, 성경 연구로 그것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들을 왕창 연구했다. 실제로 그의 연구 노트 90%는 그쪽 주제였다.[* Alan Sokal, 'Fashionable Nonsense: Postmodern Intellectuals' Abuse of Science', picador, 1999.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그 노트를 연구하고 뉴턴을 '''중세의 마지막 마법사'''라고 한 바 있다.] 덕분에 친구인 [[에드먼드 핼리|핼리]]가 뉴턴의 관심을 물리학으로 돌려놓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사실 [[연금술]]을 연구하고도 장수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연금술에서는 [[수은]]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시절에 물질의 특성을 확인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냄새를 맡거나 직접 먹어보는''' 방식이었다. 뉴턴은 특별한 부작용은 겪지 않았던 것 같지만, 말년에 [[우울증]]에 걸린 것이 수은 중독 탓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시기는 사실상 연금술이 유행한 마지막 시기로,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찰스 2세]]도 열심히 연구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말이 있다. * [[명예혁명]] 직후(1688) 대학 대표로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임스 2세]] 통치 시기 꽤나 살벌하던 제임스 2세에게 직언을 자주 해 꽤나 인기가 높았다.] 투표에는 빠짐없이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당시 속기록에 딱 하나만 있다고 한다. '''"거, 바람 들어오니 창문 좀 닫아주시오."''' *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그는 [[고양이]]를 길렀는데, 지나다니기 쉬우라고 문아래 작은 여닫이문을 하나 달아 놓았다. 그런데 새끼를 낳으니까 [[뻘짓|옆에 작은 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걸 본 친구가 '''"어미가 문 연 거 그대로 따라가게 하면 되잖아."'''라고 하니까 당황했다는 일화. * 그 밖에 연구에 열중하는데 배가 고파 간식으로 [[달걀]]을 삶아서 먹으려고 주섬주섬 책상을 손으로 더듬어보다 손에 잡힌 대충 둥근 걸 펄펄 끊는 냄비에 넣고, 나중에 달걀이 다 삶아졌나 하여 꺼내 보니 달걀은 온데간데없고 책상에 두었던 [[회중시계]]가 냄비에서 나오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시계는 꽤 비싼 물건. 배터리가 아니라 테엽을 사용해서 전부 수제품인지라 싼 것도 지금으로 치면 수십만원이 넘어갔다.] * [[페스트]] 치료를 연구하려고 [[두꺼비]]를 이용해서 약으로 만들려는 기록이 있다. * [[케임브리지 대학교]] 가이드에 의하면 뉴턴의 방 창문 밖의 토양을 검사해본 결과, 수은을 비롯한 화학 물질의 농도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고 한다. 뉴턴이 장기간 꾸준히 미처리 화학 물질을 창 밖으로 투척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예상되는 원인은 게으름이라고 한다. * 그의 이름을 딴 단위로 힘 (force)의 단위인 뉴턴(N)이 있다. [[뉴턴의 운동법칙#s-2.2|1kg의 물체를 1m/s^^2^^으로 가속시킬 때 드는 힘이 1N]]. 간단하게 느낄려면 100g짜리 물건을 들어올렸을때 손에 느껴지는 힘이 약 1N[* 정확히는 0.98N]이다. * 1717년 조폐국장 재직때 [[영국]] [[은]]이 [[중국]]과의 [[차]]와 [[비단]]과 [[도자기]]로 교환되어 시중에 [[은]]이 부족해지자 [[금본위제]]를 주장하면서는임의로 [[금]]과 [[은]]의 교환비를 1:15로 정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